행정 부채(Admin Debt)
기술 부채
스타트업계에서 많이 회자된 단어가 ‘기술부채(Tech Debt)’이다. 스타트업은 초기 개발 리소스가 부족하다. 소수의 개발자가 서비스를 만들어서 운영하게 되는데 시장의 반응이 좋으면 급격하게 성장을 하게 된다. 들이닥친 개발이슈들을 처리하기에도 빠듯해서 공수가 많이 들어가는 보다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개발을 진행하기 어렵다. 초기에 처리하지 못한 개발이슈들이 나중에는 처리하기가 더욱 어려워져서 마치 이것이 ‘부채(Debt)’ 와 같은 것에 빗댄 표현이다.
특히, 배달의 민족의 김범준 CTO가 입사를 하고 나서 ‘기술 부채’ 에 대한 소회가 다음의 글에 잘 나와있다.
우아한형제들의 Baby Steps - 우아한형제들 기술 블로그
행정 부채(Admin Debt)
이와 더불어 이 글에서 다루고 싶은 부분은 행정 부채(Admin Debt)이다. 초기에 명확하게 정하지 못한 행정적인 부분이 현재의 비지니스에 큰 부담을 주는 경우를 의미한다.
스타트업은 인원이 작고 결과적으로 ‘생존’이 목표가 된다. 성장을 해야 생존할 수 있고 제품과 이에 대한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절대적 우선순위가 된다. 자연스럽게 그밖의 행정적인 부분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예를 들어, 가장 단순한 행정 관련 이슈를 몇가지를 생각해보자.
- 사업을 어디에서 시작하는게 좋을까? 사무실 없이 시작하는게 좋을까? 어차피 창업지원센터/엑셀러레이터가 많으니 이런곳에 일단 들어가는게 좋을까? 코워킹스페이스에서 시작하는게 좋을까? 그냥 단순히 사무실을 얻는게 좋을까? 어느지역에 얻어야 할까?
- 회사의 비용은 어떻게 처리하고, 어느정도의 투명성을 유지해야할까? 비용에 대한 감사는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까? 급여는 어느정도를 감내해야 할까?
- 회사의 휴일은 몇일로 해야할까? 재택근무를 가능하도록 해야할까? 출근시간은 지켜지는게 좋을까? 퇴근을 정시에 하는게 문제일까?
사실 누군가와 함께 특정 공간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고 사업을 시작한 그 순간부터 모든 행정적인 절차는 시작된다. 이런 사소한 결정들이 모여서 해당 스타트업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흔히 사람들은 회사의 비전이나 문화가 마치 마법처럼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하는 것, 이런 부분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내부 행정절차에 대한 분명한 원칙과 프로세스를 정하는 것이다.
행정업무는 잡무인가
처음 회사를 설립하게 되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것이 바로 여러가지 잡무다. 계약서, 세금계산서, 회계, 장부, 급여 등 처음에 정해야 할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비지니스와 무관해보이는 이런일을 일컬어 ‘잡무’라고 한다.
- 생각없이 표준근로계약서를 쓴다. 그안에 있는 자세한 규정들과 상세 조건에 대해 숙지 하지 않은채로 진행하게 되면 채용, 해고, 퇴직금 등의 인사문제가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 공동창업자들은 모두 회사 체크카드를 가지고 있는것이 좋으니 모두가 카드를 발급받는다. 정확한 기준없이 해당 프로세스를 진행하게 되면 회사의 비용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 구독을 하면 특정기간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많다. 일년/매월결제의 기간도 다르고, 가격도 다르다.
비지니스가 커지면 커질수록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행정관련 이슈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때쯤되면 이런 잡무를 처리할 직원을 채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피스 매니저
흔히 경리라는 직무다. ‘잡무’를 처리하는 직무가 경리다. 앞서 언급한것처럼 행정업무를 얕게 보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업무정도로 치부하는 회사가 많다. 하지만 경리는 생각보다 매우 중요한 직무다. 회사에 방문하는 손님들의 첫인상이 되기도 하고, 회사의 대표 전화를 받기도 하며, 직원들과 직/간접적인 접촉이 많아서 평소 직원들이 불편해하는 부분을 가장 먼저 알아차릴 수 있기도 하고, 회사의 통장/카드 등의 주요 정보에 대한 통제권도 가진다. 또한, 이런 행정업무를 매일 같이 처리하기때문에 회사의 행정프로세스에 어떤 부분이 개선되어야하는지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많은 직원들의 사소한 요청을 처리해야한다는 점에서 스트레스가 많은 직무이기도 하고, 회사쪽에서도 중요하지 않은 직무로 대우도 좋지 않은편이라서 근속연수도 낮은 편이다. 업무의 특성이 회사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것이다보니 잘한것보다는 잘못한부분이 눈에 더 잘 들어오기도 한다.
그래서 제대로된 오피스 매니저를 뽑는것은 매우 중요하고, 해당 직원을 잘 관리하고 챙겨주어 전문성을 가지도록 해야한다.
풀프루프(Fool-Proof) 시스템
스타트업 초기에 다양한 행정업무가 시스템화가 되어있지 않을 가능싱이 높다. 사람이 하는 업무가 많아지면 실수도 많아지게 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다양한 회사 업무를 체계적으로 메뉴얼화/시스템화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클라우드 기반의 다양한 행정관련 솔루션들이 출시되고 있기때문에 예전과 같이 무거운 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ERP)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런 클라우드 기반의 서비스는 버전관리 및 백업이 되기때문에 회사의 중요한 계약서 및 문서는 기본적으로 이런절차를 거치도록 하는것이 바람직하다.
풀프루프(Fool-Proof)라는 개념이 있다. 영어단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한마디로 ‘바보방지’ 시스템이다. 공장에서 제조 공정의 순서를 착각하거나, 작동 버튼을 잘못눌러서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럴때 아예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1
2002년 5월 10일 낮 1시 영국 런던에서 북쪽으로 19㎞ 떨어진 하트퍼드셔(Hertfordshire) 지역의 포터스바역. 이 역으로 들어오는 4량짜리 열차가 선로 이탈하면서 역 승강장에 충돌했다. 7명이 숨지고 80명이 부상당한 대형 참사였다.
그로부터 4년 뒤. 영국 BBC방송은 이 사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BBC가 사고의 원인을 지목한 이유가 영국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일본의 하드록(Hardlock) 공업이 만든 ‘절대 풀리지 않는 나사’인 ‘하드록 너트(nut)’를 썼으면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을 텐데, 당시 철도회사의 잘못된 방침이 재앙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영국 고속철도 당국은 즉각 하드록 공업의 나사 2만개를 매월 공급받아 열차 차량과 궤도, 전력 공급선에 교체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원문보기: 풀리지 않는 나사, 하드록공업 사례
위 사례는 프로세스와 절차에 따라서 상품의 질이 결정되는 제조공정의 사례에 국한되어 있지만 행정적인 업무도 위의 사례들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대표의 관심과 책임
스타트업의 대표나 임원급 직원들의 경우, 중요도가 낮다고 생각해서 행정업무를 잘 챙기지 못하거나 전적으로 위임하는 경우가 많다. 잘못된 생각이다. 회사의 대표는 누구보다 디테일하게 이런 행정업무에 대해 파악하고 있어야한다. 모든 큰 문제는 사소한 문제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고, 특히 이런 행정문제가 그렇다. 대표가 간과한 사이에 불필요한 곳에 돈이 쓰이고 있을 수도 있고, 본인은 잘 모르는 직원들의 불편함을 놓치고 있을수도 있다. 무엇보다 행정절차 및 시스템은 회사 문화의 기본이다. 해당 시스템이 어떻게 짜여져 있는지만 확인해도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루지고, 투명한 조직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